1980년 1월 3일, 비운의 복서 김성준 ‘원정 판정패’의 아쉬움

 



1980년 새해 첫머리, 대한민국을 울린 비보

1980년 1월 3일, 일본 도쿄의 복싱 성지 고라쿠엔 홀에서 날아온 소식은 가난하고 고단했던 시절 국민들에게 큰 자랑이었던 세계 챔피언의 함락 소식이었습니다.

당시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이었던 김성준 선수는 도전자인 일본의 나카지마 시게오를 상대로 4차 방어전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15라운드 동안 피와 땀으로 얼룩진 대혈투 끝에 돌아온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판정패’였습니다. 원정 경기라는 불리함과 주심의 석연치 않은 경기 운영은 국내 복싱 팬들의 가슴에 큰 아쉬움과 분통을 남겼습니다.




1. ‘인간 승리’의 주인공, 챔피언 김성준

복서 김성준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방황하던 청소년기를 지나 사각의 링에서 희망을 찾은 그는 1971년 프로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특유의 끈질긴 인파이팅 능력을 가다듬으며 무섭게 성장한 그는 1975년 한국 챔피언, 1978년 1월 동양태평양복싱연맹(OPBF) 챔피언을 거치며 아시아 무대를 제패했습니다.

마침내 1978년 9월 30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타이틀매치에서 태국의 네트르노이 보라싱을 3회 KO로 눕히며 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에 우뚝 섰습니다. 소년원 출신의 방황하던 청년이 세계 최고가 된 서사는 당시 수많은 서민에게 거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2. 운명의 1980년 1월 3일, 고라쿠엔 홀의 사투

3차 방어전까지 무사히 성공한 김성준은 4차 방어전의 무대로 일본 도쿄 원정길을 선택했습니다. 상대는 일본이 전폭적으로 밀어주던 강자 나카지마 시게오였습니다.

공이 울리자 도전자인 나카지마는 홈 팬들의 성원을 등에 업고 저돌적인 압박을 감해왔습니다. 경기가 중반으로 치닫으면서 나카지마는 머리를 들이밀며 들어오는 이른바 '버팅(Headbutting)' 반칙을 반복적으로 감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성준 선수의 눈가와 이마가 찢어져 붉은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시야가 피로 가려지는 최악의 조건이 형성된 것입니다.

정상적인 주심이라면 나카지마에게 경고나 감점을 부여해야 마땅했으나, 주심은 홈 커스터머의 이점을 묵인하듯 관대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피를 흘리는 악조건 속에서도 김성준은 특기인 카운터펀치를 날리며 챔피언의 자존심을 걸고 맞받아쳤습니다.







3. 국내를 뒤흔든 '원정 편파 판정' 논란

마지막 15라운드 공이 울렸을 때, 김성준 선수는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경기를 마쳤습니다. 국내 중계진과 팬들은 승리 혹은 무승부 방어를 기대했으나, 심판진은 도전자인 나카지마 시게오의 판정승을 선언했습니다. 1년 3개월 동안 지켜온 세계 챔피언 벨트가 넘어가는 순간이었습니다.

도쿄발 패배 소식이 전달되자 대한민국 전역은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국민들은 화면을 통해 나카지마의 노골적인 반칙 행위를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국내 언론과 전문가들은 일제히 '일본의 원정 텃세가 빚어낸 편파 판정'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당시는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이 국가적 자부심의 결정체였던 시절이었기에, 국민들이 느낀 상실감과 아쉬움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4. 역사 속에 남은 불굴의 투혼

타이틀을 획득한 나카지마 시게오의 천하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불과 2개월 만인 1980년 3월, 파나마의 일라리오 사파타에게 판정패하며 타이틀을 허망하게 넘겨주었습니다. 반면 김성준 선수는 원정 경기가 남긴 데미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후 세계 정상 탈환에 실패한 뒤 1982년 링을 떠났습니다. 은퇴 이후의 삶 역시 순탄치 않아 1989년 만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비록 공식적인 기록은 '타이틀 방어 실패'로 남았지만, 1980년 1월 3일 그가 보여준 모습은 결코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적대적인 환경과 눈을 가리는 선혈 속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펀치를 뻗었던 그의 모습은 대한민국 복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혼'이었습니다. 부당한 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맞섰던 챔피언 김성준의 처절한 사투를 우리는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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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뭉클한 그때 그 시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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