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5월, 알래스카의 별이 된 영웅: 고상돈 대장의 마지막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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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산 사나이 故 고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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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故고상돈 대장 |
1977년 9월 15일,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는 무전 한마디로 온 국민을 울렸던 청년 고상돈. 그가 에베레스트 정복 2년 만에 알래스카의 차가운 설산에서 산화했다는 소식은 당시 한국 사회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1. 새로운 도전: 에베레스트를 넘어 '북미의 지붕'으로
국민 영웅의 멈추지 않는 발걸음
1977년 9월 15일,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서며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는 명언을 남긴 고상돈은 명실상부한 국민적 영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훈장과 명예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에베레스트 영광의 무게를 뒤로하고, 그는 다시 한번 거친 설산으로 향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북미 대륙의 최고봉, 알래스카의 매킨리봉(Mount McKinley, 현 데날리산, 6,194m)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기상 조건을 가진 산, 매킨리에 도전장을 던지다
매킨리는 높이 자체는 에베레스트(8,848m)보다 낮지만, 북극권에 가까워 '세계에서 가장 춥고 기상 변화가 혹독한 산'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특히 베이스캠프와 정상 사이의 수직 고도차가 에베레스트보다 커서 체력 소모가 극심한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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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수 있다”를 증명한 국민적 영웅 |
오일쇼크의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보내는 희망
당시 대한민국은 제2차 오일쇼크의 여파로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물가가 폭등하는 등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사회 전반에 퍼진 실의를 씻어내기 위해, 고상돈 대장은 다시 한번 국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소수 정예 '한국 매킨리 원정대'의 결성 1979년 5월, 드디어 운명의 원정대가 결성되었습니다.
고상돈(31세, 대장): 풍부한 경험과 리더십을 갖춘 정신적 지주
이일교(24세, 대원): 패기 넘치는 젊은 피이자 고상돈의 든든한 조력자
박훈규(31세, 대원): 고상돈과 고락을 함께해온 베테랑 산악인
이 세 명의 소수 정예 대원은 거창한 지원 없이도 오직 실력과 투지로 무장한 채 알래스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들의 배낭 속에는 단순한 등반 장비가 아니라, 억눌린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영하 40도의 혹한과 블리자드를 뚫고
원정대가 마주한 알래스카의 대자연은 자비가 없었습니다. 매킨리(데날리)는 북극권에 인접해 있어 에베레스트보다 훨씬 강력한 저기압과 살을 에듯 차가운 강풍이 몰아치는 곳입니다. 원정대는 낮에도 영하 4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추위, 그리고 앞을 분간할 수 없는 거센 눈보라(블리자드)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산소 부족보다 더 무서운 것은 동상과 저체온증이었지만, 대원들은 서로의 몸을 자일(로프) 하나에 의지한 채 사선을 넘나드는 등반을 이어갔습니다.
마침내 터져 나온 무전, "여기는 정상이다!"
마침내 1979년 5월 29일 오전 11시 15분(현지 시각), 고상돈 대장과 이일교 대원은 매킨리의 가장 높은 곳에 발을 딛는 데 성공했습니다. 1977년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딱 2년 만에 이뤄낸 한국인 최초의 매킨리 정복이었습니다. 당시 베이스캠프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박훈규 대원과 무전기 너머로 들려온 그들의 목소리는 환희와 격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정상에서의 짧은 축제
두 대원은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도 품속에 소중히 품어온 태극기를 펼쳐 들었습니다. 에베레스트에 이어 북미의 지붕까지 정복했다는 자부심에 두 대원은 얼어붙은 서로의 어깨를 껴안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은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승전보를 알렸고, 이 소식은 곧바로 고국으로 전해져 오일쇼크로 시름하던 국민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운명의 시간, 짧았던 기쁨
하지만 매킨리는 그들에게 긴 기쁨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정상에서 보낸 시간은 불과 수십 분. 하산을 시작해야 할 무렵, 매킨리의 기상은 더욱 험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비극의 그림자가 환희로 가득했던 그들의 뒤편으로 서서히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3. 운명의 오후 1시 20분 웨스턴 립(Western Rib): 설산에 잠든 두 영웅
하산길에 마주한 죽음의 빙벽
정상을 정복한 기쁨도 잠시, 오후가 되자 매킨리의 기상은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시야를 가리는 눈보라 속에서 하산을 시작한 지 약 2시간 뒤, 원정대는 해발 약 5,000m 지점 부근의 악명 높은 급경사 빙벽인 '웨스턴 립(Western Rib)' 구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곳은 경사도가 60~70도에 달하는 수직에 가까운 빙판길로,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한 번의 실수가 곧 죽음'으로 통하는 마의 구간이었습니다.
자일(로프)에 묶인 운명 공동체
당시 고상돈 대장과 이일교, 박훈규 세 대원은 서로의 몸을 하나의 안전 자일(로프)로 연결한 상태였습니다. 이는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산악인들의 굳은 약속이었지만, 이날은 거꾸로 가혹한 운명의 족쇄가 되고 말았습니다. 맨 앞서 내려가던 막내 이일교 대원이 얼어붙은 빙벽에서 그만 발을 헛디디며 균형을 잃었습니다. 찰나의 순간, 엄청난 속도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이일교의 하중이 중간에 있던 고상돈 대장을 덮쳤고, 두 사람은 저항할 틈도 없이 800m 아래의 수직 빙벽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기적적인 생존, 그러나 처절했던 외침
맨 뒤에 있던 박훈규 대원 역시 두 동료의 무게에 끌려 수백 미터를 함께 추락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를 살린 것은 빙벽 사이에 난 좁은 틈인 '크레바스'였습니다. 기적적으로 크레바스 모서리에 걸려 멈춰 선 박훈규 대원은 온몸이 골절되고 피투성이가 된 채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는 흐릿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안간힘을 다해 빙벽 아래를 향해 동료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습니다.하지만 메아리쳐 돌아오는 것은 매킨리의 차가운 칼바람 소리뿐이었습니다. 하얀 눈 위로 선명하게 그어진 추락의 흔적 끝에는 정적만이 감돌았습니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던 한국 산악계의 거성은 그렇게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차가운 알래스카의 설산 속에서 장렬히 산화했습니다.
4. 시대가 기억하는 영웅의 퇴장: 별이 된 청년 고상돈
열흘 만에 전해진 비보, 멈춰버린 대한민국
비극적인 추락 사고가 발생한 지 약 열흘이 지난 1979년 6월 초, 알래스카로부터 날아온 비보는 온 국민의 가슴을 무너뜨렸습니다. 당시 국내 주요 일간지들은 호외를 발행하며 일제히 "에베레스트의 영웅 고상돈, 매킨리에서 별이 되다"라는 제목으로 1면을 장식했습니다. 에베레스트 정복 소식에 거리를 누비며 환호했던 국민들에게 그의 전사 소식은 믿기 힘든 충격이자 커다란 슬픔이었습니다.
눈물바다가 된 서울시청 광장과 국민장
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서울시청 광장에는 대규모 분향소가 마련되었습니다. 검은 리본을 가슴에 단 수만 명의 시민이 줄을 지어 분향소를 찾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영정 사진 속 활짝 웃고 있는 청년 고상돈을 보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정부는 한국 산악 역사에 남긴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려 체육훈장 청룡장을 추서했으며, 그의 장례는 산악인장으로 엄숙하게 거행되었습니다. 제주도 서귀포 출신인 그를 기리기 위해 한라산 기슭에는 현재 '고상돈로'가 명예도로로 지정되어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거목이 된 후배들의 토양이 되다
고상돈 대장은 서른한 살이라는 짧고 굵은 생을 마쳤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그가 보여준 '불굴의 도전 정신'은 척박했던 한국 산악계에 거대한 불씨를 지폈습니다. "우리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 그의 발자취는 이후 엄홍길, 박영석, 허영호 같은 후배 산악인들이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고 세계적인 산악 거목으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토양이 되었습니다.
5. 잊지 말아야 할 이름, 이일교와 박훈규
1979년은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와 YH 사건 등 굵직한 정치적 사건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해 5월, 우리에겐 히말라야와 알래스카를 정복했던 한 청년의 순수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기억 속에 고상돈 대장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나요?
"역사는 기록하는 사람에 의해 기억됩니다." 더 많은 영상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가슴 뭉클한 그때 그 시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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