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에 시작된 ‘소련판 베트남 전쟁’과 신냉전의 서막

 



1. 데탕트의 종언, 평화의 시대가 저물다

1970년대 세계 정세는 미국과 소련이 서로 화해의 무드를 조성하던 '데탕트'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197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넘으면서 전 세계는 다시 한번 차가운 냉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당시 대한민국이 12.12 군사 반란의 후폭풍 속에 있었을 때, 중앙아시아에서도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거대한 침공이 시작된 것입니다.

 


2. 침공의 배경: 왜 아프가니스탄인가?

소련이 크리스마스를 기해 전격적인 침공을 감행한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 친소 정권의 위기: 아프가니스탄 내 친소련 성향의 공산 정권이 반군(무자헤딘)의 저항과 내부 분열로 붕괴 위기에 처하자, 소련은 자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직접 개입을 결정했습니다.

  • 전략적 요충지: 아프가니스탄은 중동과 인도양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소련은 이곳을 장악하여 남진 정책의 교두보로 삼고자 했습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3. 12월 27일 ‘폭풍-333 작전’과 대통령궁 점령

침공 사흘 뒤인 12월 27일, 소련 특수부대는 아프간의 하피줄라 아민 대통령이 머물던 타지베그 궁전을 기습 공격했습니다.

단 40분 만에 대통령을 사살하고 친소파인 바브라크 카르말을 수반으로 하는 괴뢰 정부를 세운 이 작전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이를 명백한 주권 침해로 규정하고 강력한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4. 신냉전의 재격화와 1980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

이 사건은 단순히 한 나라의 전쟁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 신냉전의 시작: 미국은 소련에 대한 곡물 수출을 중단하고 대소련 경제 제재를 단행했습니다. 70년대의 화해 무드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2.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진구 국가들은 침공에 항의하며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했습니다. (이후 1984년 LA 올림픽에는 소련 등 공산권이 불참하며 보복 보이콧으로 이어집니다.)

  3. 무자헤딘의 저항: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아프간 반군인 '무자헤딘'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이 지원은 훗날 또 다른 국제 정세의 불씨가 되기도 합니다.


아프간 - 무자헤딘



5. 마무리하며: 10년의 늪, 그리고 제국의 몰락

소련은 금방 끝날 것이라 예상했던 전쟁에서 10년 동안 발이 묶였습니다. 결국 1989년 아무런 소득 없이 철군해야 했고, 이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전비 지출과 국력 소모는 훗날 소련 붕괴의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1979년 크리스마스의 침공은 역설적으로 '거대 제국의 몰락'을 알리는 조종이었던 셈입니다. 12.12로 뒤숭숭했던 한국의 그해 겨울, 지구 반대편에서도 이처럼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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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뭉클한 그때 그 시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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