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 기록] 11월 3일, 박정희 대통령 국장(國葬) – 거리를 메운 200만의 통곡

 




[1979 기록] 11월 3일, 눈물 속의 영결식
건국 최초 국장(國葬)으로 거행된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길

1. 대한민국 최초의 국장(國葬)

1979년 11월 3일, 서거 9일 만에 故 박정희 대통령의 영결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치러진 '국장'이었으며, 전국은 조기를 게양하고 관공서와 관공립 학교는 휴무에 들어갔습니다. 아침부터 서울 시내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백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그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했습니다.




2. 긴박하고 엄숙했던 영결식의 전개

영결식은 오전 10시, 중앙청(현 광화문 광장 인근) 광장에서 유족과 각계 대표, 그리고 세계 41개국에서 온 조문 사절단 등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되었습니다.

📋 주요 진행 과정

  • 조총 발사: 고인에 대한 경례와 함께 21발의 조총이 발사되며 영결식이 시작되었습니다.
  • 최규하 대행의 조사: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다"는 내용의 눈시울 붉히는 조사를 낭독했습니다.
  • 종교 의식: 불교, 기독교, 천주교 순으로 종교 의식이 거행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3. "잘 가오, 대통령"… 거리를 메운 통곡의 소리

영결식이 끝난 후, 영구를 실은 운구 차량은 광화문을 출발해 시청 앞 광장, 서울역, 삼각지를 거쳐 국립묘지로 향했습니다. 도로변에는 약 200만 명(당시 추산)의 시민이 빽빽하게 늘어서 "박 대통령!"을 연신 외치며 통곡했습니다.

특히 유족인 박근혜, 박근영, 박지만 삼 남매가 뒤따르는 운구 행렬이 지날 때마다 시민들의 슬픔은 극에 달했습니다. 당시 기록 영화나 사진을 보면, 길가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우는 노인들과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학생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4. 육영수 여사 곁에 잠들다

오후 2시경, 운구 행렬은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현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5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육영수 여사의 곁에 나란히 안장되었습니다. 안장식이 진행되는 동안 전국에는 1분간 묵념의 사이렌이 울려 퍼졌으며, 전 국민이 하던 일을 멈추고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5. 마치며: '박정희 시대'의 마감과 새로운 시작

11월 3일 국장은 단순히 한 지도자의 장례식을 넘어, 1960년대부터 이어져 온 '경제 개발의 시대'이자 '권위주의의 시대'가 공식적으로 마침표를 찍는 의식이었습니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서울의 봄'이라는 민주화에 대한 갈망과, 또 다른 권력의 등장을 예고하는 불안감이 동시에 감돌고 있었습니다. 역사는 이 날을 대한민국 현대사의 거대한 한 페이지가 넘어간 날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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